중소 제조사가 AI를 처음 들인다면, 새 설비보다 이미 쓰고 있는 기록 옆에서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여기서 기록은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수주·재고·출하를 한곳에 기록하는 프로그램)나 엑셀이고, 그 기록과 메일 사이를 사람이 손으로 잇는 사무 일이 출발점입니다. 근거는 국내 조사 두 건의 결과와 연구진의 제언입니다. 두 조사는 대상이 달라서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흔한 장면을 하나 그려 보겠습니다. 실제 회사가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해 꾸민 장면입니다. 오전 9시, 거래처에서 견적 요청 메일이 옵니다. 담당자는 메일에 적힌 품번을 ERP에서 찾아 단가와 재고를 확인하고, 그 숫자를 엑셀 견적서 양식에 옮겨 적은 뒤, 다시 메일에 붙여 회신합니다. 옆자리 구매 담당은 오후 내내 거래처 거래명세서(물건을 보내며 품목과 수량을 적어 함께 보내는 서류)와 ERP 발주 내역을 대조하고, 담당자는 납기를 묻는 전화에 답하려고 또 ERP 화면을 엽니다.
이 장면에서 판단이 필요한 순간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한 화면의 숫자를 다른 화면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엑셀 함수로는 짝이 맞지 않아 사람이 눈으로 읽어 가며 옮기거나 맞춰 보는 일이 AI에게 처음 맡기기에 알맞습니다. 사람이 매일 해 오던 대조 결과가 있어서, AI의 결과를 그 결과와 나란히 놓고 맞는지 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견적은 거래처로 바로 나가는 문서라 첫 후보로는 뒤로 미룹니다. 옆자리 구매 담당이 하는 거래명세서와 ERP 발주 내역 대조가 더 쉬운 출발점입니다.
제조업의 AI 활용은 아래쪽입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국가데이터처의 기업활동조사를 2017년부터 2024년까지 같은 기업을 해마다 따라가며 분석한 결과가 올해 8월에 나왔습니다. AI를 활용하는 기업의 비율은 2017년 1.4%에서 2024년 9.2%로 늘었습니다. 7년 사이 6.5배입니다. 특히 2023년(6.1%)부터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그런데 산업별로 나눠 보면 제조업은 5.7%입니다. 보도에 나온 산업 가운데 가장 낮고, 전체 평균(9.2%)에도 못 미칩니다. 연구진은 이를 고용 비중이 큰 핵심 산업이 디지털 전환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로 보면서도, 이미 깔린 스마트공장(생산 설비와 공정 정보를 디지털로 연결한 공장)을 들어 “이미 구축된 스마트공장 등 디지털 기반 위에 AI를 결합할 여지가 큰 잠재 영역이라는 기회의 신호”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기존 스마트공장 사업과 AI 도입을 연계해, 이미 갖춰진 디지털 기반을 지렛대로 삼는 접근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권고했습니다. 이 글의 적용 방안은 이 권고에서 출발합니다. 다만 권고의 바탕은 50인 이상 기업의 데이터라서, 열다섯 명 규모 회사에 옮겨 쓸 때는 작게 시험하며 확인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다만 이 통계에는 직원 열다섯 명 안팎의 회사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기업활동조사는 상용근로자(기간을 정하지 않았거나 1년 이상 고용된 직원) 50인 이상, 자본금 3억 원 이상인 회사법인만 조사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조사를 쓴 한국직업능력연구원(직능연)의 다른 분석 보도자료에 적힌 조건입니다.
공장 AI는 1,000곳 중 1곳입니다
작은 제조사를 직접 센 조사는 따로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이 공장을 가진 중소·중견 제조기업 5,000곳을 2024년 10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찾아가 조사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제조 AI를 도입한 기업은 전체의 0.1%였고, 도입 계획이 있는 기업도 1.6%였습니다. 보도자료에서 이 숫자는 제조데이터·AI 항목에 나오고, 제조 AI의 정의는 따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항목 이름으로 보아 생산 현장에 쓰는 AI를 센 것으로 보입니다.
앞의 제조업 5.7%와 숫자가 크게 다른 것은 대상 규모와 AI의 범위가 달라서입니다. 그래서 두 숫자를 나란히 비교하지는 않습니다.
스마트공장으로 넓혀 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도입률은 중견기업까지 포함하면 19.5%, 중소기업만 보면 18.6%입니다. 도입한 기업의 75.5%는 조사가 나눈 수준 가운데 가장 낮은 기초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평균 도입 비용은 7억 5천만 원이었습니다. 사람을 늘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스마트공장 인력을 더 뽑을 계획이 있는 기업은 14.5%에 그쳤고, 조사에서 인력 확충이 이뤄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 것은 비용 부담(47.1%)이었습니다.
직원 열다섯 명 회사의 대표가 이 숫자를 보고 공장부터 바꾸기를 망설이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가장 많이 고른 것은 기록이었습니다
같은 조사에 눈여겨볼 숫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이 들여온 기술 가운데 1위는 ERP(76.3%)였습니다. 설비를 제어하는 장치(16.9%)나 생산 실행 시스템(MES, 작업 지시와 실적을 관리하는 프로그램, 14.4%)보다 훨씬 많습니다. 전체 기업이 아니라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 안에서의 비율이고, 무엇을 먼저 들였는지를 보여 주는 숫자는 아닙니다.
이 조사에서 스마트공장 기술에는 설비만이 아니라 ERP 같은 사무 시스템도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 디지털에 돈을 쓴 제조사가 가장 많이 고른 것은 설비가 아니라 기록 시스템이었습니다. ERP를 들인 회사라면 수주, 재고, 출하 기록이 이미 한곳에 쌓이고 있습니다. 비어 있는 것은 그 기록과 사람의 일 사이를 잇는 부분입니다. 견적서, 발주 대조, 납기 회신은 ERP 안이 아니라 ERP와 엑셀, 메일, 전화 사이에서 사람이 처리합니다. 이미 갖춘 디지털 기반 위에 AI를 결합하라는 연구진의 제언을 사무실에 옮기면, 바로 이 사이가 출발점입니다.
열다섯 명 회사의 사무실을 그려 봅니다
실태조사에서 평균 종사자는 14.7명이었고, 그중 60.6%가 생산직이었습니다. 두 숫자로 계산하면 생산직이 아닌 사람은 평균 5.8명이고, 여기에는 대표와 연구 인력도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무 일은 서너 사람의 몫이라고 보고, 서두처럼 회사 하나를 꾸며 보겠습니다. 직원 열다섯 명의 금속 가공 회사이고, 사무실에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첫 일은 구매 담당의 대조입니다
구매 담당은 지금 거래처가 보낸 거래명세서와 ERP의 발주 내역을 화면 두 개에 띄워 놓고 한 줄씩 맞춰 봅니다. 어긋난 줄을 찾으면 거래처에 전화하거나 입고 수량을 고칩니다.
먼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거래명세서의 품번이 ERP 품번과 그대로 같다면, 이 대조에는 AI가 필요 없습니다. 엑셀의 VLOOKUP이나 COUNTIF 함수로 오류 없이 끝나고, 그쪽이 더 빠르고 정확합니다. AI가 함수보다 나은 경우는 거래처마다 표기가 다를 때입니다. 거래처는 “M8 육각볼트 SUS”로 적고 ERP는 내부 코드로 적으면 함수로는 짝이 맞지 않지만, AI는 품명의 뜻으로 짝을 지어 줄 수 있습니다. 구매 담당이 품명을 눈으로 읽어 가며 짝을 짓고 있다면, 그 일이 AI의 첫 자리입니다.
AI를 쓰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거래명세서를 엑셀 파일로 보내는 거래처부터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PDF 표는 열만 골라 복사하다 깨지기 쉽고, 종이나 팩스로 오는 명세서는 숫자를 다시 옮겨 적어야 해서 이 방법이 맞지 않습니다. 발주 내역은 ERP에서 그 거래처, 그 기간만 엑셀로 내려받고, ERP가 없다면 엑셀 발주 장부에서 같은 범위를 골라 씁니다. 두 목록에서 단가와 거래처 열은 지우고 품명·품번과 수량 열만 남깁니다. 붙이는 내용은 회사 밖 서비스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서비스도 입력한 자료를 모델 학습에 쓰지 않도록 설정한 계정이나 회사용 요금제에서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남긴 두 목록을 ChatGPT나 Claude 같은 대화형 AI 서비스 창에 붙이고 “두 목록의 모든 줄을 같은 품목끼리 짝지은 표 하나로 만들고, 짝이 확실하지 않은 줄과 수량이 다른 줄, 한쪽에만 있는 줄에는 표시를 달아 줘”라고 맡깁니다.
처음 2주는 사람이 하던 대조를 그대로 하고, AI가 지은 짝과 표시한 줄을 사람 결과와 나란히 비교합니다. 짝을 잘못 지었거나 놓친 줄이 있으면 이 차이로 드러납니다. AI가 만든 표를 엑셀에 붙여 두 수량 열의 합계를 내고, 원래 두 목록에서 직접 낸 합계(SUM)와 맞춰 봅니다. 합계가 맞으면 AI가 줄을 빠짐없이 읽은 것이지만, 짝을 다 맞게 지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서 시험 기간에는 사람의 대조를 줄이지 않습니다.
이 일을 첫 후보로 권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비교 기준이 되는 사람의 대조 결과가 매일 나오므로, AI가 지은 짝을 바로 맞춰 볼 수 있습니다. 품명과 수량만 있으면 되니 단가나 거래 조건을 넣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시험 기간에는 사람의 대조와 겹쳐 놓으니, AI가 잘못 지은 짝도 입고 처리 전에 드러납니다.
나머지 두 사람의 일은 뒤로 미루시길 권합니다. 영업 담당의 견적은 거래처로 바로 나갑니다. 경리 담당의 세금계산서는 국세청 신고로 이어집니다. 둘 다 틀리면 회사 밖에서 문제가 됩니다.
사람이 계속 쥐는 일을 정해 둡니다
AI를 들이기 전에, 사람이 계속 맡을 일을 세 가지로 정해 두시길 권합니다. 첫째는 거래처로 나가는 것입니다. 견적 발송과 납기 회신이 그렇습니다. 둘째는 돈이 정해지는 것으로, 이번 거래의 단가와 할인입니다. 셋째는 신고와 세금입니다. AI는 초안을 만들고 어긋난 곳을 표시하는 데까지만 하고, 보내기와 확정 버튼은 사람이 누릅니다.
견적은 대조로 효과를 확인한 다음 단계입니다. 그때도 정해진 단가표의 숫자를 견적서에 옮기는 일까지는 AI에게 맡길 수 있지만, 단가가 회사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내 도구에서만 맡기시길 권합니다. 학습 제외 설정은 자료가 모델 학습에 쓰이지 않게 할 뿐, 회사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막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대조 단계에서도 단가와 거래처 열은 지우고 붙입니다. 반면 이번 거래에 얼마를 받을지 정하는 일은 사람이 합니다. AI가 직원에게 예정 출하일을 알려 주는 것과 그 날짜를 거래처에 약속하는 것도 다른 일입니다. 앞의 것은 직원이 한 번 더 보고 거르지만, 뒤의 것은 회사의 말이 됩니다.
매번 하던 확인을 줄일지는 시험 결과로 정합니다. 2주 동안 AI 결과와 사람 결과가 한 줄도 다르지 않았고 AI 쪽이 더 빨랐다면, 그 일 하나만 사람의 전체 대조를 AI가 표시한 줄 확인과, 엑셀로 직접 낸 합계 대조로 바꿉니다. 이렇게 바꾸면 AI가 잘못 지은 짝이 다음 전체 대조 때까지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사람이 전체 대조를 다시 해서 AI 결과와 맞춰 보시길 권합니다. 그 위험을 한 달 치로 묶어 두는 장치입니다. 2주 동안 한두 줄만 달랐다면, 원인이 표기 차이인지 AI의 실수인지 확인한 뒤 2주를 더 병행하시길 권합니다. 여러 단계를 스스로 이어서 처리하는 AI 에이전트는 이렇게 확인을 줄여도 되는 일이 생겼을 때 검토하면 됩니다.
조사가 세지 않은 것: 사무실 AI
기업활동조사의 5.7%에는 사무 업무에 쓰는 AI도 섞여 있을 수 있지만 따로 나누어 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 업무에 AI를 쓰는 작은 제조사가 얼마인지는 두 조사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작은 제조사 전체에서 ERP를 쓰는 비율도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록 옆 사무 일부터 시작하자는 방안은 조사 수치가 직접 증명한 결론이 아닙니다. 공장 AI는 드물고 디지털 투자는 기록 시스템에 몰렸다는 두 조사의 결과, 그리고 이미 갖춘 디지털 기반을 지렛대로 삼으라는 연구진의 제언에서 이끌어 낸 적용 방안입니다. 조직에 들일 때는 이 차이를 감안해, 앞의 2주 병행처럼 자기 회사의 숫자로 효과를 확인한 뒤 넓히시길 권합니다.
첫 후보는 이렇게 시험합니다
옮겨 적기와 맞춰 보기는 같은 칸에 넣습니다. 둘 다 사람이 해 오던 결과와 맞춰 볼 수 있는 일입니다. 2주가 지나도 AI 쪽이 사람보다 빠르지 않거나 AI와 사람의 판정이 다른 줄이 계속 나오면 그 일은 후보에서 뺍니다.
마치며: ‘설비’가 아니라 ‘옮겨 적는 일’
중소 제조사의 AI 전환을 새 설비를 들이는 일로만 보면 큰 투자 결정이 됩니다. ERP든 엑셀이든 이미 쓰고 있는 기록 옆에서 사람이 옮겨 적는 일로 보면 이번 주에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됩니다.
오늘 해 볼 일은 하나입니다. 지난주 사무실에서 ERP나 장부의 숫자를 옮기거나 맞춰 본 일 가운데, 엑셀 함수로는 안 되어 눈으로 읽어 가며 한 일을 세 개만 적어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참고 자료
- 중소벤처기업부, 제1차 스마트제조혁신 실태조사 결과 보도자료 전문: https://www.venturesquare.net/966944
- 헤럴드경제(미주판), 기업 AI 활용률 7년 새 6.5배: https://www.heraldk.com/article/2026081917170398098
- 한국직업능력연구원, THE HRD REVIEW 2026년 특별호 보도자료: https://www.newswire.co.kr/newsRead.php?no=1040061
